고려 성균관은 조선의 성균관과 마찬가지로 국가 최고의 교육기관입니다. 이 건물은 고려 초기에 별궁인 대명궁(大明宮)으로 지어졌는데, 이후 중국 사신들을 위한 객관인 순천관(順天館)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유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숭문전(崇文殿)으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그 후 성균관의 전신인 국자감(國子監)이 지금의 건물로 옮겨오면서부터 교육기관으로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려 성균관은 18동의 건물이 남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앞쪽은 공부를 하는 강학구역으로서 명륜당(明倫堂)이 중심 건물이고, 뒤편은 배향구역으로서 공자를 모시는 대성전(大成殿)이 중심건물입니다. 이러한 고려 성균관의 건물 배치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한양으로 천도하고 성균관도 한양으로 이전하여, 고려 성균관은 개성의 향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성은 옛 고려왕조의 도읍이었으므로, 지금까지도 이 건물을 고려 성균관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고려 성균관은 고려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려 성균관 마당에는 북측 천연기념물 제386호인 은행나무와 북측 천연기념물 제387호인 느티나무가 있어서 풍치를 돋워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