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충비

선죽교를 건너기 전 서쪽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커다란 비각이 있습니다. 비각 안에는 영조와 고종이 선죽교에 행차했다가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며 세운 표충비 2기가 있는데, 북쪽에 있는 비는 1740년(영조 16)에 세운 비이고, 남쪽에 있는 비는 1872년(고종 9)에 각각 건립된 것입니다.

표충비는 10톤이 넘는 거북 받침 위에 검은 대리석의 비를 세우고 합각지붕의 비머리를 올려 놓았습니다. 영조가 건립한 비에는 왕이 직접 쓴 시라는 뜻의 ‘어제어필선죽교시(御製御筆善竹橋詩)’라는 글자와 “도덕과 충정이 만고에 뻗치니 높은 절개가 태산북두처럼 우뚝하다(道德精忠亘萬古 泰山高節圃隱公)”라는 시가 새겨 있습니다. 그리고 뒷면에는 1740년에 영조의 개성 행차 시 선죽교를 돌아보고 비를 세웠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종이 건립한 비도 이와 대체로 같고, 앞면에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죽음을 불사한 충성심 온 누리에 빛났고 우리나라에 도가 살아있음을 포은공께서 보였도다(危忠大節光宇宙 吾道東方賴有公)”라는 시를 새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