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남대문은 고려 제34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었던 공양왕 대인 1391년에 축조를 시작하여 조선이 건국된 이후인 1394년(태조 3)에 완공된 개성 내성(內城)의 정문입니다. 서울의 남대문은 1년 후인 1395년에 짓기 시작하였으니 개성 남대문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이어지는 건축양식의 변화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건축물입니다.
개성 남대문은 화강암 축대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문루를 세워 건축되었습니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 도로 건설로 성벽을 철거하면서 ‘연복사종(演福寺鍾, 북측 국보유적 제136호)’이 있던 종각이 헐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가 1954년에 복원되었습니다.
연복사종은 본래 개성 남대문 남쪽 연복사에 있었던 범종으로 우리나라 5대 명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게가 14톤에 달하는 이 종은 1346년(충목왕 2)에 제작되었는데, 1563년(명종 18)에 연복사가 화재로 소실된 후 남대문으로 옮겨졌고, 그 후 1900년대 초까지 개성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었던 종입니다.
18세기에 강세황이 그린 『송도기행첩(松都紀行帖)』 「송도전경(松都全景)」에는 남대문 서쪽 종루에 연복사종이 달려 있지만, 일제강점기 종루가 헐린 이후에는 아래 사진처럼 남대문 문루 안에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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